사건의 의뢰
매우 전형적인 보이스피싱 사건이었습니다.
피고인은 알바X, XX천국 등의 사이트에서 ‘고액 알바로 로펌 서류 전달 심부름하는 알바’라는 말에 속아 알바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보이스피싱 조직이 보이스피싱에 속은 피해자들로부터 현금을 수거해오는 일을 시킨 것이었죠. 즉, 피고인도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은 또다른 피해자였던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법률상 보이스피싱 조직의 공범, 즉 사기죄 및 공문서위조, 동행사죄의 공범으로 기소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사건의 진행
익히 알려진 대로, 보이스피싱 범죄는 거의 100% 실형 선고가 이루어지는 상황입니다. 이 사건의 경우에는 피해자도 상당히 많았고, 심지어 보이스피싱 조직이 시키는 대로 문서 출력 및 전달까지 하였기 때문에 공문서위조 및 행사죄까지 병합되어 기소된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변호사들도 방어를 포기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언 변호사는 ‘피고인도 속아서 한 일’이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사기죄든 공문서위조죄든 고의가 있어야 처벌되는 죄입니다. 그런데 피고인도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서, 조직이 시키는 대로 했다고 진술하고 있었습니다. 즉, ‘범죄인 줄 알았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말은 모든 피고인이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모든 변호사가 그 말을 증거로 구현해내는 것은 아닙니다. 이언 변호사는 그 작업에 착수하였습니다. 단순히 몰랐다는 말은 변명에 불과합니다. 변호사는 변명을 변론으로 바꾸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①과거에 모르고 자랐다는 사정(학력, 경력), ②당시에 몰랐다는 사정(조직이 알바로 속인 수법), ③몰랐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자신의 신원을 노출시켜 가며 카카오택시를 타고 카드 결제를 하며 알바에 임한 증거들)… 심지어 당시 지인들을 수소문하여 증언대에 세웠습니다. 보이스피싱 사건에서는 흔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언 변호사는 끝까지 물고늘어져 원하는 진술(당시 피고인이 순진하게 알바비를 탔다고 자랑하고, 이상하다고 친구들이 말하자 바로 그만두었다는 진술)을 모두 받아냈습니다.
결과
판결 선고기일 직전까지도 피해자들은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었고, 피고인과 피고인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언 변호사는 태연하게, 알고 잘못한 것이 아니면 형법은 사람을 벌하지 않으니 너무 걱정 말라고 피고인을 다독였습니다. 보통 선고기일에는 변호인이 나오지 않지만, 이언 변호사는 공판을 거듭하고 계속하여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피고인에 대한 심증이 충분히 지워져 있고 이런 희미함으로는 형법을 적용할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선고기일, 판사님께서는 긴 고민과 흔적을 여과 없이 설시하시고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이 정말 모르고 했을 수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고 말씀하신 후 드디어 무죄판결을 선고했습니다.
교훈
형사사건, 특히 고의를 다투는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판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의심이 드는가’입니다. 그러나 숙련된 법관의 확신은 결코 쉽게 바뀌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형사 전문 변호사, 범죄를 수사하고 기소하여 공판을 지휘해 본 변호사가 수사의 관점에서 치밀하게 ‘이런 걸 보면 모르고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객관적 증거, 구체적 정황들을 하나하나 끌어모아 논리적 실에 꿰어 변론해야 비로소 의심, 즉 ‘그럴 수도 있다’라는 마음을 들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